Jealousy
"A sentiment which is born in love and which is produced by the fear that the loved person prefers someone else" (Littre)
질투
"사랑으로 야기되어, 사랑의 대상이 다른 이를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형성되는 감정" (리트레?)
넌 애인을 찾는게 아니라 엄마를 찾고 있는거 같애.
언젠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엑스 걸프렌드 중 하나-아주 세련된 서울 아가씨였다-가 내 머리를 스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어느 정신분석학자는 말했다. 남자에게 여자는 엄마와 창녀 밖에 없다고. 물론, 그의 이론 중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는 옳지 않은가. 그렇다면, 난 엄마를 닮은 창녀를 찾고 있었던 것일까.
어리고 어려웠던 시절에 엄마는 조그만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집에는 나 혼자 있었고, 그래서 밥도 혼자 차려서 먹고-그래서 아직까지도 혼자서 밥 먹는게 오히려 더 편하다. 이것이 엄마에겐 죄의식으로 남았는지, 아직까지도 가끔씩 집에 들어가면 나의 신경질적인 거부에도 불구하고 밥을 차려주려고 한다.- 숙제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 문제는 비가 오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들고 가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엄마'들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수많은 '엄마'들 중에 우리 엄마는 없었다. 말하자면, 내가 정말로 엄마를 필요로하던 순간에 엄마는 부재하고 있었던 거다. 하교길을 공유하던 다른 친구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내 엄마를, 할머니를 땅에 뭍던 날 시골 집 대문 앞에서 할머니의 손을 기다리던 고양이들처럼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나는 아직도 대구가 소우지라는, 지리 시간에 배운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 시절, 혼자서 비를 맞으며 등이 굽어 집에 돌아오던 날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마더 콤플렉스.
엄마가 버젓이 살아 있는 내게 또다른 그녀가 내뱉은 단어다.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 '따위' 별로 그립지도 않았던 군대시절 마저도, 나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엄마'에게 내 속내를 다 털어놨던 것이었다.
필리핀과 한국과의 시차를 잊고 한국의 집에, 진짜 엄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오랜만의 통화였다. 내 잘 지내요, 음식은 별로 불편한거 없어요, 내가 원래 아무거나 잘 먹잖아요, 마음 맞는 사람 많아서 좋아요, 일은 그냥 할만해요,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
아니 엄마.